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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맥추감사주일
시편 150:1~6    2017-07-02    


시150:1∼6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시150: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50: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시150: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150: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시150: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현상이 시편 146편부터 150편까지 계속됩니다. 이와 같이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시편을 일명 “할렐루야 시편,” 또는 줄여서 “할렐 시”라고 부릅니다.

할렐루야의 “할렐루”는 “찬양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이인칭 복수 명령형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야”는 하나님의 성호 여호와의 단축형입니다. 그러니까 할렐루야는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라는 뜻입니다.

시편은 일명 “찬양의 책”이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시편에는 “할렐루야”라는 단어를 비롯해서, “찬양하다,” “찬송하다,” “송축하다,” 또는 이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시편의 주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러나 시편의 초반부에 나오는 시편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는 하나님에게 하소연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여기에서는 시편 기자들이 자기들의 문제와 고통과 슬픔을 하나님에게 애타게 호소하고 있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컨대 시3:1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시4:1 말씀입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또한 시5:1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이와 같이 초반부의 시편에는 당면한 문제로 인해서 야기된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그 내용이나 어조가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뒤로 가면 뒤로 갈수록, 그 분위기가 점점 밝아집니다.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점차로 찾아옵니다. 하소연하며 간구하는 내용이 감사하는 내용으로 서서히 바뀝니다. 그리고 찬양이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시편의 끝 무렵에 가면,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눈에 뜨일 정도로 그 강도가 깊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시편 150편은 시편의 마지막 편입니다. 말하자면 시편의 결론인 셈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점점 강도를 더해오던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시편 150편에서는 그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시편 150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찬양하라”는 단어가 11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시편 150편은 기쁨과 감사 속에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충만한 노래입니다.

시편 전체의 내용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많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돌보심에 따라, 그들은 광야를 통과하고 드디어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큰 기쁨과 감사 속에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 전체의 줄거리입니다. 또한 그 가운데서 시편 150편이 차지하는 위치입니다. 이와 같이 시편 150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노래입니다. 또한 그로 인해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바로 시편 150편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볼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너무도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큰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찬양의 장소입니다.


시150:1 할렐루야 (1)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2)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은 우리가 찬양해야 할 장소를 두 곳으로 요약해서 말씀합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의 궁창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 두 곳 찬양의 장소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말하자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소에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히10:25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모이기를 싫어한다든지, 모이더라도 억지로 마지못해서 모이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소에 모여 힘써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바라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성소에 함께 모인 것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힘써 하나님을 찬양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와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의 궁창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말의 궁창(穹蒼)은 “하늘 궁(穹)”과 “푸를 창(蒼)”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궁창의 문자적인 뜻은 “푸른 하늘”입니다. 성경에서 궁창이라는 단어는 천지 창조의 둘째 날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창1:8 말씀을 보면, 천지 창조의 둘째 날 하나님은 궁창을 만드시고 그 이름을 하늘이라 칭하셨습니다. 그런데 고후12:2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갔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세 종류의 하늘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첫째 하늘은 대기를 가리킵니다. 새가 날아다니는 곳입니다. 둘째 하늘은 우주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떠있는 곳입니다. 셋째 하늘은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이 가운데서 궁창은 어느 하늘을 가리킵니까?

창1:20 말씀처럼,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라 다닙니다. 이는 첫째 하늘을 가리킵니다. 또한 창1:14 말씀처럼, 하늘의 궁창에는 광명이 있습니다. 이는 둘째 하늘을 칭합니다. 그러나 겔1:26 말씀이 밝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보좌는 궁창 위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궁창은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들, 곧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포함해서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는 끝없이 높고 광활한 하늘과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성소 밖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함께 모였을 때도 찬양해야 하지만, 혼자 있을 때도 찬양해야 합니다. 주일에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지만, 평일에도 역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행16:25 말씀을 보면,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그것도 옥중에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며 그들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에 함께 모였습니다. 우리 모두 힘써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올립시다. 그리해서 우리를 가두고 있는 것들이 모두 열리며, 또한 우리를 매고 있는 것들도 다 벗겨지는 은혜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찬양의 이유입니다.


시150:2 (1)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2)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찬양의 장소가 두 곳으로 설명된 것처럼, 찬양의 이유도 역시 두 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찬양의 이유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능하게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능하게 행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앞으로도 능하게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벤에셀이 되셨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능하신 행동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에벤에셀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임마누엘이 되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지금도 능하신 행동으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여호와이레가 되십니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은 능하신 행동으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이레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해야 합니다. 앞서 우리가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그것도 지극히 위대하십니다.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은 높고 위대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더 깊이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시44:21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全知)

시50:1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全能)

시92:8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永遠)

시139: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遍在)

시146: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主權)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을 몇 가지만 생각해보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무궁하신 지혜 등을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절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찬양의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찬양합시다. 그리해서 이 시간 우리의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찬양의 방법입니다.


시150:3 (1)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2) 비파와 (3)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150:4 (4) 소고 치며 (5) 춤 추어 찬양하며 (6) 현악과 (7)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시150:5 (8)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9)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여기에 찬양의 방법이 아홉 가지로 묘사되었습니다. 그 한 가운데 있는 다섯 번째는 춤을 추는 동작입니다. 그 나머지 여덟 가지는 모두 악기의 이름들입니다. 그러니까 한 가운데서는 춤을 추고, 그 주변에서는 여러 가지 악기들을 연주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물론 이들 악기들은 단순하게 음악적인 효과만을 높이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들 악기들은 어떤 영광스러운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특별하게 기념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차례대로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나팔입니다. 민10:10 말씀처럼, 나팔은 절기 때와 같이 희락의 날 곧 기쁜 날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나팔 소리로 찬양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둘째와 셋째는 비파와 수금입니다. 둘 다 현악기의 일종입니다. 느12:27 말씀과 같이, 이들 두 악기는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비파와 수금도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사용된 악기들이었습니다.

넷째와 다섯째는 소고와 춤입니다. 소고는 손으로 자루를 잡고 치는 작은 북입니다. 출15:20 말씀처럼,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를 건넜을 때 여인들이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니까 소고 치며 춤추는 것도 큰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현악입니다. 이것은 이미 언급된 비파와 수금 이외의 다른 현악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45:8 말씀처럼, 현악은 왕궁에서 왕을 즐겁게 하는 악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소에서 찬양으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려야 합니다.

일곱째는 퉁소입니다. 나팔과 마찬가지로 퉁소는 관악기에 해당합니다. 때때로 같은 단어가 피리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욥21:12 말씀처럼, 퉁소 곧 피리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악기입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은 즐겁게 찬양해야 합니다.

여덟째와 아홉째는 큰 소리 나는 제금과 높은 소리 나는 제금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제금은 타악기의 일종입니다. 이것은 두 짝으로 만들어져서, 그 둘을 서로 마주 쳐서 소리를 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영어성경에서는 심벌즈(cymbals)라고 번역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당시에는 두 종류의 제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종류는 큰 소리를 내는 제금이었고, 또 다른 한 종류는 높은 소리를 내는 제금이었습니다. 아무튼 대상15:16 말씀처럼, 이들 제금들도 즐거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었습니다.


대하5: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대하5:14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했을 때의 광경입니다. 노래하는 자들과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이 다 함께 일제히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들은 소리를 높여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가 넘쳤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자신들의 온 힘과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찬양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에 대한 표징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전을 가득하게 채우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찬양합시다. 그리해서 우리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 성전에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함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누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호흡이 있습니까?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살아서 숨을 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마땅합니다.

롬1:20∼21 말씀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여기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천지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핑계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그들에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능하신 행동을 보여 주셨고, 아울러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이는 지금도 또한 앞으로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여 우리의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우리의 마음이 미련하고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도 아니하지는 않습니까? 이와 같이 경건하지 아니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는 아무도 없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합시다. 그리해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함을 보며,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모두의 삶이 이전보다 앞으로가 더욱 더 복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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