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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예수님이 당하신 다섯 번째 심문-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누가복음 23:8~12    2017-04-14  


눅23:8∼12 예수님이 당하신 다섯 번째 심문


눅23:8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눅23: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눅23: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눅23:11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눅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님이 당하신 여섯 번의 심문을 차례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여섯 번의 심문 가운데 처음 세 번은 유대인들에게 당하신 심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 세 번은 이방인들에게 당하신 심문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은 안나스에게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 모인 공회 앞에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은 성전의 법정에 모인 공회원들 앞에서 또 다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하는 자로 정죄를 했습니다. 죄목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라 말씀하심으로 신성 모독하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갔습니다. 그 뒤로 예수님은 이방인들 앞에서 세 번의 심문을 더 당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다섯 번째로, 예수님은 분봉 왕 헤롯에게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여섯 번째로, 예수님은 다시금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모두 여섯 번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어제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신 네 번째 심문, 곧 예수님이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당하신 심문을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온 무리는 마치 예수님이 백성을 선동해서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물론 빌라도는 그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자기의 손을 빌려서 예수님을 처형하려 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예수님을 간단하게 심문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예수님을 고발한 자들에게 심문의 결과를 알렸습니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반드시 죽여 없애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욱 강하게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5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여기에 “갈릴리에서부터”라는 말이 나옵니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였습니다. 그 때 빌라도는 그 갈릴리 사람들이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그의 군인들을 보내서 그 갈릴리 사람들을 무참하게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유명한 사건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발한 자들은 예수님도 역시 갈릴리 사람으로 로마에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빌라도의 마음을 움직여서 예수님을 처형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빗나갔습니다. 도리어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역이용을 해서 골치 아픈 일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인 것을 알고는, 빌라도는 예수님을 갈릴리를 관할하는 분봉 왕 헤롯에게 보냈습니다.

유월절을 맞아, 분봉 왕 헤롯은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본문은 예수님이 분봉 왕 헤롯에게 심문을 당하시는 장면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다섯 번째 심문을 분봉 왕 헤롯 앞에서 당하셨습니다.


눅23:8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요20:20을 보면,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뵈옵는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헤롯이 두 가지 이유로 기뻐했습니다. 첫째, “이는 그의 소문을 익히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입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오래토록 보고 싶었던 예수님을 뵙게 되었으니 매우 기쁜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둘째,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나타나셔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특별히 예수님이 우리의 눈을 활짝 열어 주셔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게 하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히 채워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의 손은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며 봉사하는 손이 되게 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의 발은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게 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제는 분봉 왕 헤롯의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분봉 왕 헤롯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헤롯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름을 가졌던 것입니다.

분봉 왕 헤롯은 자기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차지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것을 책망하자, 그는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뒤 분봉 왕 헤롯은 자기의 아내가 된 헤로디아의 말을 듣고서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헤롯은 예수님을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자기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며 예수님을 증언하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눅8:3 말씀입니다.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따라서 구사와 같은 신하를 통해서도, 헤롯은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치심과 그가 행하신 엄청난 능력을 다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모든 병자를 다 고치셨다. 죽은 자들도 살리셨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셨다. 귀신들도 그 앞에서는 떨며 나갔다. 예수님은 이적을 행하여 배고픈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헤롯 왕은 이런 등등의 소문을 다 들었을 것입니다.

눅9:7∼8 말씀입니다.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이어서 눅9:9 말씀입니다.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왜 헤롯이 예수님을 보려고 했습니까? 눅13:31 말씀처럼, 그는 예수님을 죽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헤롯은 향락을 즐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큰 연회를 열고, 신하들에게 자신을 과시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가 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던 것도 잔치 도중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수많은 이적을 행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이참에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셔서 만드신 음식으로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즐기고 싶었을는지도 모릅니다. 또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셨다니까, 헤롯은 예수님이 자기들 앞에서 공중부양 정도는 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분봉 왕 헤롯은 자기 왕궁을 극장처럼 만들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와 그의 신하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어릿광대나 마술사나 배우처럼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헤롯의 동기가 옳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눅23: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헤롯은 여러 말로 예수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예컨대 “네가 과연 내 아버지가 죽이려 했던 유대인의 왕이냐?” “내가 죽인 세례 요한이 너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진짜냐 아니면 괜히 하는 말이냐?”

또는 “네가 많은 이적을 행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면 눈속임이냐?” 등등 헤롯은 여러 말로 수다스럽게 예수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헤롯의 질문을 하나도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고, 그저 쓸데없는 의문으로 우리의 생각을 채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쓸데없는 질문을 퍼붓는 헤롯에게 예수님은 어떤 대답을 하셨습니까?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세례 요한의 목을 벤 헤롯이었습니다. 막강한 권세를 가진 자였습니다. 따라서 헤롯이 원한다면, 그는 얼마든지 예수님의 목을 벨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헤롯의 질문에는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걸하는 맹인들이 하는 말도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들이 하는 말도 들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만일 헤롯이 진실한 마음, 상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에게 물었더라면,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기꺼이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니고데모처럼 어떻게 하면 자기가 구원을 받겠느냐고 물었다면, 예수님은 기꺼이 그에게 이와 같이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너를 구원하시려 나를 보내셨다. 그러니 나를 믿으라. 그러면 네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그러나 예수님은 헤롯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헤롯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예수님에게 여러 말로 물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또한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신 대로,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과연 어떠한 마음 자세로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까? 오늘 뭐 색다른 말이나 들을 수 있을까? 이런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예수님은 입을 다무시고 대답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하고 애통하는 심령을 바라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간절히 사모하는 심령입니다. “무슨 말씀이라도 하옵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이러한 심정으로 나올 때,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위로해주십니다.


눅23: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빌라도 앞에서 힘써 예수님을 고발했던 공회원들은 헤롯에게까지 몰려와서 “서서 힘써”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그 내용은 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발했던 내용 그대로였을 것입니다. 눅23:2 말씀과 눅23:5 말씀을 연속해서 읽어봅니다.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이런 말로 그들은 힘써 예수님을 헤롯에게 고발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내어놓으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안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속으로 우셨을 것입니다. 마23:37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면서 분명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눅23:34 전반부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의 사랑은 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처럼 당부하셨습니다. 행1:8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먼저 예루살렘에게 복음을 전하고, 먼저 예루살렘에 주의 사랑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사랑을 널리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눅23:11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래도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기라도 했지, 이는 꿀 먹은 벙어리네! 아니 벙어리를 내게로 보냈구먼.” “반란 좋아 하시네. 꽁꽁 묶여 꼼짝도 못하면서, 어떻게 로마에 반란을 일으켜?”

“아니 죽은 자를 살렸다는 자가 어떻게 자기는 살리지를 못하지?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구원해?” 이런 등등의 말로 헤롯은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겼을 것입니다. 나아가서 헤롯은 그의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공회원들은 예수님께 침 뱉고, 예수님을 때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서,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자가 누구냐?”며 여러 가지 말로 그들은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헤롯과 그의 군인들도 예수님을 희롱하며 괴롭혔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에게 빛난 옷을 입혔습니다. 헤롯은 그의 신하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저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니, 내가 입는 옷 중의 하나를 그에게 입혀라.” 마치 빌라도의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홍포를 입혀 예수님을 왕처럼 꾸며서 희롱을 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하는 일을 묵묵히 당하셨습니다. 사53:7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여 우리가 이 시대의 헤롯과 그의 군인들은 아닌가요?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그저 예수님을 왕으로 꾸며만 놓고, 예수님을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헤롯과 그의 군인들은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희롱했지만, 우리는 우리의 전심을 다해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공경하고 또 예수님을 경배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모든 수모를 끝까지 견디셨습니다.

예수님이 몸 버려 피 흘려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우리도 우리의 모든 것 다 바쳐서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위해서 헌신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바쳐 헌신하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설사 우리의 일생토록 장작불 위에서 우리의 몸을 불사르게 태운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그 일을 기꺼이 감당해도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의 삶이 예수님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눅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헤롯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도로 보냈습니다. 그 결과가 12절 말씀입니다. 본시 헤롯과 빌라도는 정치적으로 서로 라이벌 관계였습니다. 분봉 왕 헤롯의 아버지였던 헤롯 왕은 자기 아들을 어린 나이에 로마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분봉 왕 헤롯은 젊은 시절을 로마에서 보내면서, 로마의 유력한 정치인들을 많이 사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라도는 분봉 왕 헤롯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 빌라도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던 갈릴리 사람들을 임의로 학살했습니다.

갈릴리는 헤롯의 관할인데,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들이 전에는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빌라도는 헤롯의 관할을 인정하는 듯이, 예수님을 헤롯에게 보내었습니다. 이에 헤롯의 마음이 풀어져, 그들은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악인들은 악한 일에는 쉽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로 인해서 그들은 쉽게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서 한 피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인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마땅히 하나가 되고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귀신들이 서로 다툰다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귀신들은 절대로 싸우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가 되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인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 잘 싸우고, 왜 그렇게 서로 다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요13:34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면서, 서로 사랑함으로 우리의 삶이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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