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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예수님이 당하신 네 번째 심문-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누가복음 23:1~7    2017-04-13  


눅23:1∼7 예수님이 당하신 네 번째 심문


눅23:1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눅23: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눅23: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눅23: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눅23:5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눅23:6 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눅23:7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네 번째 심문을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세 번에 걸쳐서 유대인들에 의해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맨 먼저 안나스에게 심문을 받으셨고, 두 번째로 대제사장이었던 가이사의 집에 모인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이 두 번은 깊은 밤중이었습니다. 날이 샌 후, 예수님은 법정에 모인 공회 앞에서 세 번째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세 번에 걸친 심문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가결을 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예수님에게 내려진 판결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처형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요18:31 말씀입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이렇듯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만 사람을 죽일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말씀을 보면, 유대인들이 돌로 스데반을 쳐 죽이는 광경이 나옵니다. 그 때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스데반을 죽일 수 있었습니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난 무리가 불법적으로 자행한 일이었습니다.

공회원들은 그런 식으로는 예수님을 처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백성들에게서 뭇매를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회는 합법적으로 예수님을 처형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예수님을 끌고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은 로마의 총독 빌라도 앞에서 네 번째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워낙 집요하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를 바랐습니다. 그 때 빌라도는 하나의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빌라도는 무리들의 고발하는 소리를 통해서,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당시 갈릴리의 통치자였던 분봉 왕 헤롯에게로 보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분봉 왕 헤롯 앞에게 다섯 번째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심문하고 희롱한 후에, 예수님을 도로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마지막 여섯 번째 심문을 다시 당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유대인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내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모두 여섯 번에 걸쳐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처음 세 번은 유대인들에게 심문을 당하셨고, 나중 세 번은 이방인들에게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신 네 번째 심문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눅23:1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무리가.” 공회원들을 가리킵니다. “다 일어나.” 본래 유대인들의 법에 의하면, 유죄판결이 나면 그 날 하루 동안은 법정을 떠나지 않고 다 자리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 하루 동안에 판결을 뒤집을 새로운 증거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공회원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다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빨리 처형하고 그 날 저녁 유월절 음식을 먹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다 이루어 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 양들이 죽임을 당하는 시각인 오후 세 시에 예수님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또한 그 시각에 죽임을 당하셔야만,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됩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 날 예수님은 장사 지낸바 되셔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금, 토, 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무리가 다 일어나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간 것도 역시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법대로 처형을 당하셨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레24:16 말씀에 의해, 예수님은 그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으셔야 했습니다.

시22:16∼18 말씀입니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모습니다. 

또 사53:5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도 역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모습입니다.

요3:14에서 예수님은 친히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20:18에서 예수님은 이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방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실 것을 이미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입니다.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너무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 회개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하며, 꿀 곧 송이꿀보다 더 달게 여기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입의 말과 우리 마음의 묵상이 늘 주께 열납되기를 바랍니다.


눅23: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빌라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고발 건을 접수하게 되었습니다. 날은 샜지만, 아직은 해가 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무리가 빌라도에게 몰려온 때는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70명이나 되는 공회원들이었습니다. 모두가 한꺼번에 몰려와서,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그 동안 빌라도는 수많은 고발 건을 접했지만, 그런 경우는 분명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빌라도는 무리 앞에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물론 공회가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하는 자라고 정죄한 죄목은 예수님이 신성 모독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종교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처형해 달라고 고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가기에 앞서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발할 구실을 급히 날조했습니다. 그들은 세 가지 이유를 대면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두 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첫째, 에수님이 백성을 미혹해서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둘째,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여 로마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셋째,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면서 로마의 황제 가이사를 대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러한 것들이 사실이라면, 빌라도는 당연히 예수님을 처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식민지를 통괄하는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로마 총독의 임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발한 내용은 전부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백성을 선동하거나 미혹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여라.” 이와 같이 예수님은 언제나 겸손과 온유를 가르치셨고, 평화와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신 적도 없으셨습니다. 눅20:25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이처럼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시면서, 가이사를 대적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자신들의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서 혼자 산으로 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단 한 번도 백성들을 선동해서 로마에 대한 반란을 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빌라도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정말로 백성을 선동해서 로마에 대해서 반란을 꾸미고 있었다면, 그 정보가 즉시 빌라도에게 올라갔을 것입니다.

눅13:1∼3 말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사할 때 빌라도가 보낸 군인들이 급습해서 그들을 살육했습니다. 그들이 로마에 대해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빌라도가 군인들을 보내 죽이도록 만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일을 예수님께 아뢰자, 예수님은 이와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와 같이 정말로 예수님이 로마에 대한 반란을 꾀한다는 정보가 조금이라도 입수되면, 빌라도는 먼저 나서서 예수님을 처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27:18 말씀과 같이,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자기에게 넘겨준 줄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빌라도는 그들이 자기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허울 좋은 구실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그들이 예수님을 반역자로 고발을 했으므로,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심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눅23: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공회원들은 빌라도에게 세 가지를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첫째와 둘째 고발은 무시했습니다. 근거가 전혀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셋째 고발만 확인이 된다면, 앞의 두 가지 고발은 저절로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셋째 고발에 대해서만 심문을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사실 이 말은 조롱 섞인 질문이었습니다. 빌라도가 보기에 당시의 예수님은 전혀 유대인의 왕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결박된 채였습니다. 예수님이 입고 있는 옷도 왕복이 아니었습니다. 먼지가 묻은 형편없는 옷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공회원들이 내뱉은 침과 가래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그들에게 맞아서 얼굴이 퉁퉁 붓고 멍들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발하는 자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아무도 나서면서 예수님을 변호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빌라도는 예수님을 업신여기는 투로 물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의 말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유대인의 왕임을 밝히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답변이 예수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사실 그대로 말씀하셨습니다.

왕에게는 왕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산에서도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해변에서도 사람들을 가르치시며, 길을 걸어 가시면서도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들을 부지런히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병 든 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시며, 배고픈 자들을 먹여주셨습니다. 이 역시 예수님이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밝히셨습니다.

딤전6:13 말씀을 보면, 이 때 예수님은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를 향하여 말씀하신 선한 증언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잠시 요18:36 이하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18:36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는 다릅니다. 세상 나라는 육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영적입니다. 세상 나라는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세상 나라는 권력으로 세워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사랑으로 세워집니다.

이어서 37절에 빌라도가 말합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예수님은 진리를 증언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증언하시고자 하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빌라도가 물은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증언하시고자 하는 진리, 곧 선한 증언이 한 마디로 잘 표현된 말씀이 바로 요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면, 자신의 죄 때문에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빌라도를 향하여 말씀하신 선한 증언의 핵심입니다.

물론 우리가 우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진리를 증언할 때는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의 이웃에게 우리를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에 대한 증언, 선한 증언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는 이미 진리에 속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진리에 속한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왕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늘 순종하기 바랍니다. 날마다 왕 되신 예수님을 공경하고, 왕 되신 예수님을 높여드리기를 바랍니다.


눅23: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공회원들이 고발한 것처럼, 예수님은 로마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우려 하셨던 것은 세상 나라가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였음을 그가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공회원들 앞에서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말하자면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공회원들은 빌라도의 판결에 순순히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눅23:5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예수님을 고발한 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마치 목숨을 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증거를 대지도 못했고, 또한 증인들을 세우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큰 소리를 치면서, 자기들의 숫자로만 밀어 붙이려고 했습니다.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들은 더욱 자기들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처음에 그들은 예수님이 백성을 미혹한다고 고발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 그들은 강도를 더하여 예수님이 백성을 소동하게 한다고 고발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했던 가룟 유다도 “내가 무죄한 자의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고 말하면서, 예수님께는 죄가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심문했던 로마의 총독 빌라도도 예수님께 죄가 없음을 말하면서,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악한 무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들이 화를 당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후 70년 예루살렘은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을 당했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만큼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예루살렘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예루살렘을 먼저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참된 제자의 길이자, 예수님을 본받는 삶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눅23:6 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눅23:7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그는 예수님을 처형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요19:8 말씀처럼, 그는 예수님을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행하신 능력들에 대해서, 이미 많은 보고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고발하는 유대인들을 무시해버릴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의 황제 가이사에게 자신에 대한 불평과 원망을 계속해서 올리게 되면, 자신의 정치적인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진퇴양난에 빠진 빌라도에게 하나의 돌파구가 열렸습니다. 예수님을 고발하는 무리의 입을 통해서,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부터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빌라도는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이두매를 관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는 분봉 왕 헤롯의 관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예수님을 헤롯에게 보냈습니다. 그 때 헤롯은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와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서 분봉 왕 헤롯에게 가서 다섯 번째 심문을 당하게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으셨습니다. 빌라도가 이 사실의 증인이었습니다. 또한 내일 살펴보겠습니다만, 분봉 왕 헤롯도 이 사실의 증인이었습니다. 빌라도의 아내도 예수님을 가리켜, “옳은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배반했던 가룟 유다조차도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고 하면서,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증언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갈2:20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산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으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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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 박상훈 목사 하나님의 자녀 로마서 8:12~17 2017.02.05 2135
654 박상훈 목사 그리스도의 사람(Those Who Belong to Christ) 로마서 8:5~11 2017.01.2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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