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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예수님이 당하신 두 번째 심문-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마태복음 26:57~68    2017-04-11  


마26:57∼68 예수님이 당하신 두 번째 심문


마26:57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마26: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마26: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마26: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마26: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마26: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마26: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마26: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마26: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마26:66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마26: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마26: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예수님은 모두 여섯 번에 걸쳐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처음 세 번은 유대인들에게서 심문을 받으셨고, 나중 세 번은 이방인들에 의해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신 첫 번째 심문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맨 먼저 안나스에게 끌려가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당시 안나스는 유대인들 가운데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그는 그 해의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의 장인이었고, 실제로 가야바의 배후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을 심문해서 예수님을 죽일 죄를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리어 예수님에게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결국 안나스는 심문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결박한 채 가야바에게로 보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2차 심문을 당하시는 광경입니다.


마26:57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마26: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예수님을 잡은 자들이 예수님을 결박한 그대로 끌고서 안나스에게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갔습니다. 당시 안나스의 집과 가야바의 집은 한 울타리 안에 있었습니다. 큰 뜰을 중심으로 안나스의 집과 가야바의 집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기 전이었습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깊은 밤중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가야바의 집에는 예루살렘 공회가 소집되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에 대한 사안이 심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본시 공회는 낮에 모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장소도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법정에서 모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밤중에, 은밀하게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공회로 모였습니다. 그러니 그 때의 공회는 합법적인 모임이 아니라 불법적인 모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심문을 받으시기 위해서, 결박된 채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장이라도 하나님께 구하셔서 열 두 영도 더 되는 천사를 보내게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들을 무찌르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기 위해, 묵묵히 끌려가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우리를 향한 불타는 사랑, 이 세상 모든 강물로도 끌 수 없는 불타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이 있기 바랍니다.

이 때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차마 예수님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차마 나서면서 자기를 나타내지 못하고, 그저 멀찍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오순절을 맞아 성령의 충만을 받으니까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모두도 늘 성령의 충만을 받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갔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가 이 뜰을 공유하고 있었으므로, 이 뜰은 안나스의 뜰이기도 하고 가야바의 뜰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가 그 곳에 간 목적은 그 결말을 보고자 했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막10:33∼34 말씀입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네가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혹시 예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을 늘 우리 마음에 깊이 담아두고,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하인들과 함께 앉았습니다. 빌라도의 군인들은 자기들의 진영으로 다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이 때 하인들은 안나스와 가야바의 하인들, 그리고 성전의 경비대원들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베드로는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선 줄로 생각했다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깨어 기도하지 않았다가 시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늘 깨어 기도하기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26: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마26: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마26: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습니다. 공회가 원하는 것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공회가 모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실을 규명한다든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예수님을 죽일 마땅한 구실, 곧 그럴싸한 죄목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는 전혀 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예수님을 칠 거짓증거를 찾아야 했었습니다. 이에 공회원들은 하인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매수해서 거짓 증인들을 많이 데리고 오게 했습니다.

때는 유월절이었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왔습니다. 따라서 하인들이 거짓 증인들을 매수하는 일은 힘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증인들이 하는 거짓 증거로는 예수님을 죽일 구실이 되지 않았습니다.

거짓 증인들이 하는 거짓 증거는 뻔했습니다. 예컨대 “우리와는 달리 예수는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더이다.” 또는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고 외치고 다니는데, 이는 로마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닙니까?” 이러 등등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거짓 증거로는 예수님을 죽일 만한 구실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 좀 쓸 만한 가치가 있는 두 증인이 왔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이다.”

물론 이것도 거짓 증거였습니다. 예수님은 요2:19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때 성전이라 함은 예수님의 몸을 가리킵니다. “너희가 나를 죽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을 거짓으로 증거 했습니다. 그것도 막14:59 말씀처럼, 그 두 증인의 말 자체도 서로 일치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거짓 증언은 증거로 채택 될 수가 없었습니다.


마26: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마26: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공회원들은 초조했습니다. 빨리 재판을 끝내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 날 중에 예수님을 죽여 없애고, 좀 편안하게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가 탄 대제사장 가야바가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두 가지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아무 대답도 없느냐?” 자기들끼리도 일치하지 않는 거짓 증언들을 하고 있는데, 무슨 대답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물론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그들을 질책하시며,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멸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침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을 보면, 공회원들이 예수님을 잡아오도록 아랫사람들을 보냈는데 그냥 돌아 왔습니다. “왜 잡아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랫사람들은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에 놀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입을 열어서 말씀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거짓 증인들의 거짓 증언으로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한 대제사장 가야바는 드디어 예수님에게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가야바는 예수님에게 최고의 성스러운 맹세를 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네가 하는 맹세를 지켜보고 계신다. 만일 네 맹세가 바르지 못할 경우,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를 벌하실 것이다.” 이런 뜻으로 가야바는 예수님에게 맹세하게 했습니다.

가야바는 예수님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자기들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가야바는 어떻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신성 모독 하는 죄로 걸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유도적인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성 모독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가야바를 비롯한 공회원들이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마26: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네가 말하였느니라.” 가야바가 말한 대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지만, 다시 살아나시어 권능의 우편에 앉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의 권능은 절대자의 권능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시지만, 다시 살아 나셔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늘 구름을 타시고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살아나서, 하늘에 오르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을 것이다. 지금은 너희가 나를 심문하고, 나를 죽이려는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이 후에는 내가 너희를 심문하고 심판하리라.” 이러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그러나”와 “이 후에”라는 두 단에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컨대 지금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시련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후에”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무한한 영광을 세세토록 누릴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후에”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인도로 푸른 초장 쉴 만한 물 가로 나아갈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이 후에” 우리는 부활의 영광을 맞이할 것입니다. 


마26: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마26:66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대제사장 가야바는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이는 극도의 슬픔, 극도의 분노를 표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속으로 그는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드디어 예수님을 죽일 구실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레24:16 말씀에 의하면, 신성 모독을 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거짓 증언들을 내세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본시 심문이 끝나면, 판결은 그 다음날 표결을 한 후에 내리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또 하루가 지나야만 집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사이에 새로운 증거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가야바를 비롯한 공회는 그 모든 과정을 완전히 무시해 버렸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표결에 부치지도 않았습니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가야바는 공회원들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공회원들은 만장일치로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했습니다. 이는 완전히 인민재판이었습니다.


마26: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마26: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공회원들은 그저 예수님을 죽이는 것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는 듯, 예수님의 얼굴에 자기들의 침을 뱉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거룩하신 얼굴에 흘러내리는 더러운 침을 바라보면서, 하늘의 천사들은 충격 속에 부르르 몸을 떨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벌레보다 못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런 수모를 겪으셨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절로 눈물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회원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예수님에게 멸시를 줄뿐 아니라, 예수님에게 고통을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주먹으로 예수님을 쳤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그들은 우선 예수님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얼굴을 마구 쳤습니다. 젊은 공회원들은 그들의 주먹으로 쳤을 테고, 좀 나이든 공회원들은 그들의 손바닥으로 때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박을 당하신 채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대항하실 수 없으시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침없이 자신들의 주먹을 날리며,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때렸습니다. 참으로 비겁하고 비열하며 사악한 자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아가서 그들은 말로도 비아냥거렸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면, 눈을 가리고 있어도 다 알 것 아니냐? 너를 친 자가 누구냐? 말해 보아라! 그것도 모르면서 네가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자처하느냐?” 그러면서 그들은 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신성 모독은 예수님이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엄청난 신성 모독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벌레보다 못한 나를 위해서 이 모든 수모와 고통을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우리가 욥의 인내를 알지만, 예수님의 인내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의 몸을 아낌없이 버리셨습니다. 우리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자신의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낫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그 얼굴을 주먹과 손바닥으로 맞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려고, 대신 자신의 얼굴을 가리셨습니다. 그러니 누가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 무엇도 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수모와 고통을 생각하면, 우리가 당하는 수모와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모진 수모와 고통을 다 겪으셨으므로, 이제는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을 높여드리고 영화롭게 해드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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