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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예수님이 당하신 첫 번째 심문-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요한복음 18:12~24    2017-04-10  


요18:12∼14,19∼24 예수님이 당하신 첫 번째 심문


요18: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요18: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요18: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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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8: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요18: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요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요18: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요18: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요18: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며 간절히 기도하신 후에 사로잡히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모두 여섯 번에 걸쳐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처음 세 번은 유대인들에게, 나중 세 번은 이방인들에게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대로, 먼저 예수님은 안나스에게 끌려가셔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안나스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동안에 그의 사위이자 대제세장이었던 가야바는 한 밤 중에 자기 집으로 예루살렘 공회를 소집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안나스에게 심문을 당하시고, 다음으로 밤중에 가야바의 집에 모인 공회에 끌려가셔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공회는 반드시 낮에 모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공회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법정에서 모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새벽에 날이 새자마자, 서둘러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법정에서 다시금 공회로 모였습니다. 자신들의 판결이 합법적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와 같이 해서 예수님은 세 번째 심문을 당하신 것입니다.

일사천리로 순식간에 예수님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먼저 유대인들에 의해서 세 번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먼저 안나스에게, 다음으로 가야바의 집에 모인 공회 앞에서, 그리고 새벽에 다시 한 번 공회 앞에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곧 사형을 시킬 수 있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서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갔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네 번째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해보니, 예수님께는 죄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고소하는 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예수님이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예루살렘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분봉 왕 헤롯에게 보냈습니다. 그 당시 갈릴리는 분봉 왕 헤롯의 관할이었습니다. 유월절을 맞이해서 분봉 왕 헤롯도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은 분봉 왕 헤롯에게 보내져서 다섯 번째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분봉 왕 헤롯도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아무런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그의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예수님께 빛나는 옷을 입혀서 다시금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여섯 번째 심문을 빌라도에게 받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짧은 시간동안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모두 여섯 차례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심문을 당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심문을 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서, 여섯 번에 걸친 심문을 묵묵히 참으시면서 끝까지 견디어 내신 것입니다.


요18: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이 때의 군대는 빌라도가 보낸 군대입니다. 천부장은 빌라도의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천명의 군인들을 거느리는 지휘관이 천부장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붙잡으러 갔던 군인들의 수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가세했습니다. 눅22:52 말씀처럼,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경비대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가서 예수님을 체포하여 결박한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사로잡으러 온 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예수라”하는 말에, “내가 그니라”고 예수님이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던 자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그들은 경배하는 자세를 취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위용과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찾거든 나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손을 대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자기가 가진 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쪽 귀를 베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말고의 귀를 만져서 낫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이 때 분명한 창조의 역사, 놀라운 기적을 그들 눈앞에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고 결박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상관들의 명에 복종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위의 것, 영원한 것을 찾기보다는 땅의 것, 그저 일시적인 것을 구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찬송가 263장 1절 가사입니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이 세상은 험하고 우리는 참으로 약합니다.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이 세상은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기도에 힘쓰면서 큰 권능을 얻어야 비로소 세상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요18: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예수님을 체포하고 결박한 무리는 예수님을 옥에 가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먼저 안나스에게 끌고 갔습니다.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20년 전, 안나스도 역시 대제사장을 역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에 안나스에게 여섯 아들이 있었는데, 돌아가면서 모두 제사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예수님이 사로잡히셨을 때는,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가 대제사장의 지위에 있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 나아갈 때는, 짐승을 가져와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반드시 흠이 없는 짐승이라야만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바칠 짐승을 가지고 가면, 성전에 있는 제사장들이 그 짐승에게 흠이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했습니다. 그러나 십중팔구는 거절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전에서 파는 짐승을 비싸게 사야합니다. 여기에서 많은 이권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성전에 올라갈 때는, 성전세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 통용 되고 있던 이방인의 화폐에는 왕의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스라엘의 화폐인 세겔로만 성전세를 바치게 했습니다. 이 때도 환율을 엄청 비싸게 해서 폭리를 취했습니다.

예수님은 두 번이나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의 책상을 뒤엎으시고 짐승 파는 자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도다”고 질책하셨습니다. 여기서 강도들은 안나스를 비롯한 그의 일가들을 칭합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기의 지위와 이권을 취함에 방해가 되므로, 그는 예수님을 죽여 없애기를 바랐습니다. 아무튼 무리는 예수님을 붙잡아 결박한 후에, 맨 먼저 당시 유대인의 최고 권력자인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요18: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표적을 보고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자 그 일 때문에, 예루살렘 공회가 모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걱정하면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보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뒤를 따르고 있다. 그대로 두면, 그들의 눈에는 마치 우리가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로마가 우리를 짓밟지 않겠는가?”

그 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공회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11:49∼50 말씀입니다.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도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가르치셨지, 로마에 반기를 들 것을 가르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단지 가야바는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성전에서 얻는 이권을 상실할까봐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요18:15∼18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부인한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차마 예수님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차마 담대하게 나서서 예수님을 변호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모습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차마 용기가 없어서, 때로는 예수님의 증인되는 일을 주저하는 우리들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은 심문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족과 허물을 다 용서하셨습니다.


요18: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여기서 대제사장은 안나스를 가리킵니다. 안나스는 과거에 대제사장이었지만, 지금은 그의 사위 가야바가 대제사장입니다. 그렇지만 안나스는 여전히 대제사장으로 불렸습니다. 예컨대 은퇴한 장로님이지만, 계속해서 장로님이라고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기 위해서 유도심문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죄목을 분명히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하는 식으로, 안나스는 예수님 스스로 무엇인가 자백하기를 바라고 예수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또한 그의 질문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네가 무엇을 가르쳤느냐?” 먼저 예수님의 교훈에 대해서 물어야 했습니다. 그런 후에 “너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 누구냐? 몇 명이냐? 어디 있느냐?”라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해서 물어야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그런데 안나스는 먼저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약점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는 자기편이 되었습니다. 그는 뇌물을 받고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넘겼습니다.  

또 예수님이 잡히실 때, 예수님을 붙잡지 못하게 막는 제자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제사장의 집 앞뜰에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나서면서 예수님을 변호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베드로는 자기 살겠다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요18: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요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안나스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예수님이 안나스를 꾸짖으셨습니다. “나는 늘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을 가르쳤다. 그런데 너는 어찌 나를 은밀하게 심문하느냐?” “나를 고소하는 자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내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물어보라!”

말하자면 예수님은 안나스의 심문이 불법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실 안나스에게는 예수님을 심문 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또한 밤중에, 은밀하게, 그것도 안나스 개인의 집에서 예수님을 단독으로 심문하는 것은 완전히 불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책망에 안나스는 당황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노련하고 관록 있는 안나스였지만, 예수님 앞에서 그의 인간적인 지혜나 잔꾀, 인간적인 관록은 전연 통하지 않았습니다. 안나스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을 바로 그 때였습니다.


요18: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여기서 아랫사람은 성전의 경비대원입니다. 당시 성전의 경비대원들은 곤봉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경비대원은 자기가 모시고 있는 대제사장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자기 몸에 있는 곤봉을 끄집어내서 그것으로 예수님을 쳤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거룩하신 몸에 처음 폭력이 주어지게 됐습니다. 아직 예수님에 대해서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예수님 몸에 폭력을 가한다는 것도 역시 불법이었습니다. 이로써 아래의 두 말씀이 응하졌습니다.

요15:25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한 미가 5:1 말씀입니다. “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경비대원 가운데 하나가 자기의 곤봉으로 예수님을 칠 때, 예수님은 바로 그 순간 그 경비대원의 팔을 꺾어버릴 수도 있으셨습니다. 아니면 그 즉시 땅이 갈라지게 하여, 그 경비대원을 땅속으로 빠뜨려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18: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예수님은 자기를 치는 경비대원에게 물으셨습니다. “내 가르침에 잘못이 있었느냐? 내가 백성들에게 무엇을 잘못 가르쳤느냐? 그렇다면 그것을 증언하라. 내가 바른 것을 가르쳤다면, 네가 나를 칠 이유가 없지 않느냐?” 이런 뜻으로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자기를 치는 자를 바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벧전2:23 말씀처럼, 예수님은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 모든 고난을 기꺼이 당하셨습니다.


요18: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안나스의 심문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안나스는 예수님을 심문하는 일을 포기했습니다. 죄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결박된 것을 풀어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안나스는 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죽이겠다는 결론은 나와 있었습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예수님을 심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안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그대로 자기 사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냈습니다. 그 동안에 이미 가야바는 자기 집에 공회를 소집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하늘에서 천사들의 경배를 받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어찌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결박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을 결코 결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때 예수님이 스스로 결박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결박을 풀어 주시려고, 예수님이 친히 결박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의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스스로 죄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시므로, 죽었어야 할 살인강도 바라바가 대신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인인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결박을 당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가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요18:25∼27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두 번째, 세 번째 부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도 가룟 유다도 똑같이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서, 다시금 사도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목매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도 많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결박에서 우리를 풀어주시려 스스로 결박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합시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다시 일어나, 예수님의 뒤를 끝까지 따라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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