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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26~30    2017-04-23    


롬8:26∼30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 끝에 있는 말씀입니다. 장차 우리는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장래의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면서 과거형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롬8:18 말씀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겪는 현재의 고난은 우리가 누릴 장래의 영광에 비하면 너무 가볍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누릴 장래의 영광은 우리가 겪는 현재의 고난에 비하면 너무도 큽니다.

우리에게는 장차 나타날 영광이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성령님은 우리에게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현재의 고난을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롬8:25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눈에 보이는 현재의 고난은 믿음으로 참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장래의 영광은 소망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장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현재의 고난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장래에 누릴 영광을 확신하는 사람은 그만큼 현재에 겪는 고난을 쉽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난으로 인해 낙심하지 말고, 늘 소망 중에 장래의 영광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장래의 영광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장래의 영광이 얼마나 확실한가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날 장래의 영광이 확실한 까닭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피조물도 다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립니다. “이와 같이” 함께 탄식하시면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님이 우리의 보혜사가 되셔서 늘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지만, 여전히 연약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연약함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연약해서 마땅히 하나님께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예컨대 한 번은 예수님의 제자 중 두 사람인 야고보와 요한이 그들의 어머니 살로메를 모시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살로메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구했습니다. “주여!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와 같이 답변하셨습니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늘 함께 지냈던 두 제자 야고보와 요한조차도 그들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있는 말씀과 같이, 바울은 셋째 하늘 곧 낙원에 이끌려 갔었습니다. 그 곳에서 바울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으면서, 지극히 신비로운 체험을 했습니다.

바울이 그 일 때문에 자고하면 안 되니까, 주께서는 그의 육체에 찌르는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그에게서 가시가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세 번 주께 간구했습니다. 그 때 주께서는 이와 같이 응답하셨습니다.

고후12:9의 말씀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바울과 같이 영적인 사람도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라고 말씀하면서,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여 그도 역시 연약하여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했음을 밝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정도로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우리는 돌이 떡인 줄로 알고, 그저 돌을 달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때로는 뱀이 생선인 줄 알고, 우리는 마냥 뱀을 달라고만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건강하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건강하기 때문에 도리어 죄를 범하는 자리에 이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도록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병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보혜사가 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26절 후반부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님은 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십니다. “말할 수 없다”는 말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며 간구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속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십니다.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그 순간까지,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롬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므로, 성령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일치합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되는 기도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친히 간구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입으로 나오는 기도가 서툴고 잘못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에서 나온 잘못된 기도가 아니라,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시는 성령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자연히 우리의 기도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서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롬8:34 말씀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 성령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고난을 이기고, 반드시 장래의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영광의 그 날에 이르기까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늘 이기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앞서 살펴본 대로, 우리는 연약해서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압니다. 예컨대 야곱의 아들 요셉의 삶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봅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미움으로 인해,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요셉은 그의 주인이었던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 곳에서 요셉은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났습니다. 요셉은 그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요셉의 해석대로 그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습니다. 그 때문에 요셉은 옥에서 2년 동안 더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이 당한 모든 고난은 나중에 요셉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요셉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욥의 삶을 통해서도, 우리는 동일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먼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압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체험을 통해서도 이 사실을 압니다. 때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우리는 힘들어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고, 그저 엎드려 “아버지여! 주여!”라고 부르짖기만 합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나면, 우리가 당한 고난이 도리어 우리에게 유익이 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또한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역사하십니다.

바다에 파도가 치는 것을 보면서도, 해녀는 파도를 겁내지 않고 바다 속으로 들어갑니다. 파도는 바다 표면에만 치지, 바다 속에는 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다 표면의 파도가 어느 쪽으로 치든지, 바다 속을 흐르는 물줄기는 언제나 한 쪽 방향으로만 흘러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피상적으로만 보면, 고난의 물결이 쉬지 않고 밀어닥치는 듯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의 물줄기는 언제나 한쪽 방향을 향해서 도도히 흘러갑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면서, 장래의 영광을 향해서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을 당하십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사실을 명심하면서, 현재의 고난을 넘어 장래의 영광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롬8:29 하나님이 (1)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2)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3)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4)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5)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과정은 다섯 단계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정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 다섯 단계는 독립적이지를 않고,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동사의 주어는 하나같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구원에 관한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 하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일단 구원의 과정이 시작되면, 중도에서 끊기거나 중단되는 법이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자를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는 법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부르신 자를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지 않는 경우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자를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시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또한 우리는 변덕스럽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깊었다가 얕아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열심은 뜨거웠다가 식기도 합니다. 그러니 만일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삶과 행동에 따라서 결정되어진다면, 우리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안에 떨 이유가 없습니다. 구원의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친히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홀로 또한 일방적으로 주도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구원에 대해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과거형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일은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이따금씩 시간이 없어서 꼭 보고 싶은 스포츠 중계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재방송을 봅니다. 재방송을 볼 때는 마음을 졸이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 팀이 이겼다는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느긋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연속극 중에 사극을 볼 때도,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쁜 사람이 주인공을 해하려고 해도, 우리는 주인공이 죽지 않고 결국은 영화롭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극을 볼 때도, 우리의 마음은 다소 느긋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미 우리의 삶은 결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으므로, 우리는 영화롭게 되기로 작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극심하더라도, 현재의 고난은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장래의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9절에는 두 가지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29절 전반부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구원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순종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날, 우리는 모든 면에서 예수님을 온전하게 본받게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목적이 29절 후반부 말씀에 나옵니다.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맏아들은 여러 아들 가운데 가장 높임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를 속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예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립니다. 아울러 우리가 장래의 영광을 누리는 날, 우리는 우리가 받은 면류관을 벗어 예수님께 드리며 세세토록 예수님께 경배하며 새 노래로 그를 찬양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나타날 장래의 영광이 확실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뒤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나타납니다. 현재의 고난 너머에는 장래의 영광이 기다립니다.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날마다 예수님 안에서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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