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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로마서 8:18~25    2017-04-02    


8:18∼25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롬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롬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오늘 본문 바로 앞 절인 롬8:17 말씀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놀라운 특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상속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되, 특별히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입니다. 따라서 장차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가 누리시는 모든 영광을 똑같이 무한대로 영원하게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먼저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고난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장차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무한하고도 영원한 영광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잠시 동안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을 기꺼이 받아야 할 것입니다.

강철 덩어리를 그대로 고물상에 갖다 주면 오천 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말의 편자를 만들어 팔면 만 원을 받습니다. 그것으로 바늘들을 만들면 삼십만 원을 받습니다. 그것을 더 두드려서 날카로운 면도칼들을 만들면 백만 원 이상을 벌 수 있습니다.

똑같은 재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두들겨 연단하면, 강도가 더 높아지면서 값어치도 더 나갑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우리를 더 귀한 존재로 만드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고난에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롬8:25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한 마디로 현재의 고난은 참고 장래의 영광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일어나는 고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십시다. 현재의 고난을 참으며, 장래의 영광을 기다리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에게는 장차 나타날 영광이 있습니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오늘 본문은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영광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여기 양쪽에 물건을 올려놓는 큰 저울이 있다고 가정을 해봅니다. 그 한쪽 편에 현재 당하는 고난을 한 데 묶어서 올려놓았습니다. 다른 한쪽 편에는 장래에 누릴 영광을 모두 합쳐서 올려놓았습니다. 

결과는 뻔했습니다. “비교할 수 없도다.” 비교할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래의 영광에 비해 너무도 가벼웠습니다. 반대로 장래의 영광은 현재의 고난에 비해 너무도 무거웠습니다. 그러므로 저울은 즉시 균형을 잃고 완전히 기울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고난의 실체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신이 실제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엄청난 고난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고후11:23 이후에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겪었던 고난들을 이와 같이 기술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와 같이 바울은 엄청난 고난을 받아 왔습니다.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고난들을 모두 묶어서 저울의 한쪽 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저울의 다른 한 쪽 편에는 자신이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모든 영광을 한 데 묶어서 올려놓았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장래의 영광에 대해서도 체험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셋째 하늘 곧 낙원에 이끌려 올라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고후12:1 이후에서 바울은 장차 자신이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바울 자신이 겪었던 체험이었습니다. 이 때 바울이 몸 안에 있었다면, 그의 육이 영과 함께 낙원에 올라갔던 셈입니다. 만일 그가 몸 밖에 있었다면, 그의 영만 낙원에 올라간 셈입니다.  

계속해서 고후12:3∼4 말씀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열 세 권이나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낙원에서 들은 말과 또한 그가 본 놀라운 영광을 도무지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음을 밝혔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낙원의 영광에 압도를 당해버린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바울은 저울의 한쪽에 자신이 당한 현재의 고난을 올려놓았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자신이 장래에 누릴 영광을 올려놓았습니다. 서로 비교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과는 “비교할 수 없도다”였습니다. 그 둘은 비교할 상대가 전연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경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광은 중한 것입니다. 고난은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영광은 영원합니다. 고난은 이 땅에서 받습니다, 그러나 영광은 하늘나라에서 받습니다. 고난은 사람에게서 옵니다. 그러나 영광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난 너머에 있는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영광을 소망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기를 즐거워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한 후에, 끝내는 자기의 목숨을 바쳐 순교했습니다.

히11:24∼26 말씀처럼, 모세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장래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현재의 고난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스데반도 고난 너머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돌에 맞아 순교하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을 겪으며 힘들어 하고 있습니까? 현재에 당하는 고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믿음으로 고난 너머에 있는 찬란한 영광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피조물도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바라고 있습니다.


롬8: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여기서 말씀하는 피조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만물, 그 가운데서 특별히 모든 동물들과 모든 식물들을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들이 다함께 애타게 기다리는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모든 피조물이 고대한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그토록 애타게 고대하면서 기다릴까요?


롬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뜻이 아닙니다. 예컨대 화분에 아름다운 꽃이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시들어서 내다 버려야 합니다. 결국은 다 썩고 맙니다. 이처럼 모든 식물은 허무한 데 굴복합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 잡아먹힙니다. 그렇다고 해서 강한 것이 계속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강한 것도 나이가 들면 병들어 죽습니다. 결국은 그 몸이 썩고 맙니다. 이와 같이 모든 동물들도 허무한 데 굴복하고 있습니다.

물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닙니다. 피조물이 스스로 원해서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금하신 하나님의 명을 거역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 왔습니다.

그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또한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이 어쩔 수 없이 허무한 데 굴복하고 있습니다.


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영원토록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 노릇 하는 데서 해방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를 때입니다. 장차 우리에게 영광이 나타날 때, 우리는 우리를 얽매는 모든 죄에서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그 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것입니다. 그 때는 모든 피조물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에 동참할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그 날을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날이 되면, 모든 피조물은 더 이상 허무한 데 굴복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썩어짐의 종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롬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두 가지 사실을 다시금 떠올려야 합니다. 하나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한다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타락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그 오랜 세월 동안 허무한 데 굴복하며 썩어짐의 종 노릇을 해 왔습니다. 그러니 이제도 피조물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을 애타게 바라고 있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요한 칼빈이 남긴 말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피조물은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었지만 그들은 참고 견뎌왔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잠깐의 고난을 참고 견디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이 서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을 겪고 계십니까? 모든 피조물이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며 다 이제까지 참고 기다려 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영광의 자유에 이를 때를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잠시 당하는 고난을 참음으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피조물이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모든 피조물이 우리와 함께 고통을 겪으면서 우리가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음을 생각하며, 현재에 당하는 고난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습니다.


롬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그뿐 아니라.” 피조물만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역시 그 날을 바라보며, 그 날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함께 탄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가리켜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습니다. 이미 로마서 8장 전반부에는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열매를 여러 가지로 밝혔습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성령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셨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성령님은 우리 몸의 행실을 죽이십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또한 16절 말씀을 보면,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십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열매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대로, 이들은 성령님의 처음 익은 열매에 지나지 않습니다. 식사할 때 appetizer 뒤에 main dish가 나오는 것처럼,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실 궁극적인 열매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 끝 부분의 말씀입니다.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이것이 바로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실 궁극적인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속으로 탄식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미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면서 늘 하나님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로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 나라의 모든 영광을 아직은 상속받지를 못했습니다.

그 일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때는 우리 몸의 속량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영은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정죄함을 받으셨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부패한 육신을 덧입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의 몸은 아직 속량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은 병들기도 합니다. 또한 죄의 유혹을 받은 육신의 생각 때문에, 괴로움을 당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롬7:24 말씀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나님의 자녀치고 이러한 탄식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는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이루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그 때 성령님은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우리에게 궁극적인 열매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일이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소망으로 남아 있습니다. 


롬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말씀드린 대로, 이미 우리는 영적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실 궁극적인 열매인 우리가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은 아직 소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고 말씀했습니다.

소망의 본질은 현재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적인 것입니다. 예컨대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고시에 합격하기를 소망하며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러다가 고시에 합격을 하면, 더 이상 고시에 합격하는 것을 소망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소망은 미래적인 것입니다. 소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보지 못하는 미래적인 일, 곧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며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소망은 그저 막연하게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에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에 근거해서 우리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확실한 영광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잠시 잠깐 당하는 고난을 어떠한 자세로 맞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마지막 절 말씀과 같이,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을 참으며 장래의 영광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요한 칼빈은 오늘 본문 롬8:18 말씀을 계속해서 암송하며 그의 임종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5번을 암송하고 16번째 암송하면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장차 나타날 영광이 있습니다. 피조물도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습니다. 가는 세월 아쉬워하지 말고, 오는 영광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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